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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이면 답니까?

글: 오정택 목사

지난 달 중순 밸리하나로교회의 담임목사로 취임했습니다.

따우전옥스지역에서 주님의교회를 섬기다가 두 교회가 통합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역이 서로 다르고 밸리까지는 먼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통합을 추진하게 된 이유는 통합이 변화와 성장의 “발화점(tipping point)”이 될 수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변화와 성장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을 보면서 “힘을 모으고, 힘을 실어주면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뭉치면 설 수 있지 않을까, 뭉치면 살 수 있지 않을까?”하는 소망으로 통합을 하였습니다. 점화되고 발화되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함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통합을 통해서 서로의 부족함이 채워지고, 약한 부분이 강해지는 상승효과가 나타나게 되지 않을까요? 물적 자본들과 인적 자본들의 상승작용이 일어나 공동체가 활성화되고,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나 통합의 성공보다는 실패의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것을 보면, 외적인 통합이 “발화점”이 되는 데는 내적인 구성원들의 “연소(combustion)”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공동체를 살리기 위해서는 외적인 통합만으로는 부족하고, 통합주체들의 내적인 “연소”가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둘이 뭉쳐 하나 되는 것이 살아나는 가능성이라면 한 공동체의 진정한 “하나 됨” 역시 살아나는 동일한 가능성이라는 진리를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구성원들 스스로 “발화점”이 되어 자기를 연소시키는 희생정신이 있다면 어느 조직이나 공동체도 일어설 것입니다. ‘너는 너고 나는 나다’라는 방관자의식을 갖고 기찻길의 양 철로처럼 영원히 일치할 수 없는 수평선을 그려간다면 통합은 더 큰 실패이며 아픔이 될 것입니다. 기찻길의 양 철로를 연결하기 위해 스스로 자기 몸을 태우는 “촛불의 정신”이 공동체를 하나 되게 하는 연결고리입니다. 내부로부터 자기 몸을 연소시키는 희생이 서게 하는 힘입니다. 우리 마음에 남을 아끼고 염려하는 사랑의 마음이 진정한 “발화점”입니다.

한 주일에 한 번은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주기도문”(Lord’s Prayer)으로 기도를 합니다. 그 때마다 울림이 있는 한 줄의 기도,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를 고백하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 기도가 삶이 되는 것이 자기를 “연소”시키는 방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당신을 사랑하기 원합니다. 용서를 구하고 용서하길 원합니다. 주님이 나에게 하신 것처럼...”

그리고 이렇게 생각의 폭을 넓혀 보는 것입니다. “내가 본 게 다가 아닐 거야, 너무 빨리 섣부르게 판단하지 말자,” “무슨 일이 있었겠지, 그렇게 행동할 만한 어떤 상황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야,” “그럴 수도 있지, 나라도 그럴 수 있었겠다.” 이렇게 생각의 폭을 넓히면 용납하는 마음, 용서하는 마음이 생기고 그 공동체는 “발화”되어 설 수 있고, 살 수 있고, 변화와 성장을 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