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종교 창세기 1.31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에 엮인 삶의 이야기

창세기 1.31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에 엮인 삶의 이야기

Christian Jung 지역선교 담당 목사 (우드랜드힐스 UMC)

흙으로 우리를 지으신 토기장이 하나님께서 그 여섯째 날에 당신이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고 “심히 좋았더라!”라고 말씀하셨다. 이렇게 창조 초기에부터 최고의 평가를 받은 사실에 기분이 어떤가? 솔직히 내 자신만 보자면 기분이 좋은데 옆 사람을 보자니 한숨이 절로 나오는가? 그래도 다시 잘 봐야한다. 좋든, 안 좋든, 밉든 곱든 여기 분명한 것은 우리 인간들은 물론, 이 세상 안에 창조된 그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명작들이기 때문이다. 그럼 당연히 누구의 손으로 만들어졌는데 감히 우리가 정죄하고 자시고 하겠는가?
그러고 보니 우린 서로 참 많이 닮았다는 것이 새삼 느낀다. 먼저 우리 삶의 주변을 보더라도 그렇다. 예를 들어, 우리 붕어빵 같은 우리의 자녀들... 사춘기 때, 속은 제법 썩이겠지만 그래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우리 ‘새끼’들이 아닌가? 그리고 하루하루 나를 닮아가는 내 아내, 내 남편.... 어쩔 땐 ‘웬수’같지만 그래도 분명 이들 모두는 다 주님 사랑의 대상들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보시고 그렇게 느끼셨을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이라고... 물론이다. 오죽했으면 성경에도 증명되기를 하나님께서는 한 인류, 한 민족, 한 세대, 한 사람을 바라보시며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라고 기록되었겠는가! (신.32.10; cf.잠.7.2 & 시.17.8). 고대은유적인 표현으로서 “the apple of the eye”란 원어 어원에 담긴 뜻은 ‘눈동자’ 안에 비친 ‘ishon’ (작은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다. 혹시 사랑하는 그 누구의 눈동자에 비친 자신을 본적이 있는가? 그 사람을 너무도 사랑하기에 더 가까이 가서 그 눈동자에 푹 빠지고 싶을 정도로... 바로 하나님께서 한 피조물인 우리에게 그만큼 가까이 접근하셨다. 그리고 정말 말로 형언 못할 그 깊은 사랑을 십자가상에서 희생제물 된 당신의 독생자 예수를 통해 보여주시지 않으셨는가!
하지만, 순간순간 이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때가 있을 것이다. 아니 “내 삶이 아직도 이 모양 이 꼴인데 어찌 믿을 수 있겠는가!”라고 반박할 수도 있다. “난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투성인데”라고 말이다... “주여! 시퍼렇게 멍든 마음에 닿는 냉정한 삶의 찬바람은 정말 칼날같이 아픈데... 이렇게 쓰디쓴 삶에 젖어버린 가슴을 졸이며 그 치유의 날을 기다리는 이 마음을 당신이 아시렵니까?”
기억하는가? 해골처럼 보이는 골고다 언덕 위 십자가에서 3개의 대못으로 처형당한 예수를 버려두고 공포에 질려 어두운 다락방에 숨어 있는 제자들을... 그리고 그 암흑 같은 좌절의 늪에서 숨죽이고 있는 그들을 찾아오신 부활의 예수를. 성경은 이렇게 증명한다: 주님께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그들에게 “손과 옆구리를 보이셨다”라고 (요.20.20).
부활하신 주님의 손과 옆구리라... 곧 십자가에서 못 박힌 팔목상처와 창에 찔림으로 입은 옆구리 상처를 언급하는 것인데, 이런 고난의 자국들은 우리에게 무슨 의미로 다가오는가? 죽음인가? 생명인가? 둘 다이다: 비록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그 죽음이 끝이 아니란 것; 곧 시련과 고난의 여정엔 분명 회복이 자리한다는 약속인 것이다. 삶속에서 부딪히면 으스러질 질그릇과도 같은 우리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부활이기에,.. 부활은 곧 세상 상처와 아픔가운데서 우리를 일으켜 세우려는 하늘권세의 증표인 것이다 (cf.롬.6장). 따라서 성령의 인치심으로 영생을 약속받은 우리들에게 부활이란 바로 지금부터 더 실제적으로, 더 체험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하늘의 비밀이라는 것이다.
약 13년 전, 달라스 텍사스에 위치한 모교회의 EM을 맡아서 사역할 때의 일이다: 현대문화와 풍습을 배경으로 세상흐름에 맞춰 춤추는 사역들로 인하여 만족은커녕 흥미조차도 찾을 수 없게 되어 사역 2년 만에 ‘burnout’된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사명에 열정이 식어버려 내 소명까지 희미해져 감을 느낀 난 고심 끝에 EM사역을 내려놓았고, 그 후 깊은 성찰과 자각의 시간을 통해 나의 ‘부름’의 이유, 곧 허락된 이 2nd Chance 삶의 목적을 찾아 나서게 되었다.
그러다가 2006년 여름, LA 모교회에서 열린 차세대 목회자들을 위한 Transgenerational Conference에 참석하게 되었다. 그때 난 소위 말하는 ‘1.5세/2세’ 목회자들이 모여 찬양과 경배 드리는 모습에 실망되어 숨이 꽉 막혀왔다. 우리의 부름이 결국 이런 것인가? 각각 맡은 대중적인 현대판 사역하다가 힘들면 이렇게 모여 서로 나누고 의지하고 울고 웃다가 하나님께 영광 드리면 하나님께선 기쁘신 것인가? 이게 소명 받은 삶의 전부인가? 하며 말이다. 그들의 예배 안에 엉켜있던 내 자신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해 밖으로 뛰쳐나와 버렸다.
그리고 난, 바로 그때, 나를 부르신 하나님의 뜻을 경험하게 되었다. 예배당 옆에 누워있는 한 다리불구 거지를 목격한 것이다. 난 이 그림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교회’인 그들은 자기들끼리 모여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손을 들고 찬양하는 판국에 어찌 예배당 옆에는 바로 이 목자들이 섬겨야 할 그 대상이 이렇게 배고파 죽어가고 있다는 것인가! 정령 그 ‘베데스다 못’을 휘저어 줄 이는 없다는 말인가? (참조: 밸리매거진 10월호, p.52).
그때부터 난 3일을 그 거지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내 소명에 주어진 사명을 다시 듣게 되었고, 곧 그것은 하나님의 선교란 것을 깨달게 되었다. 아마 내 와이프가 알았다면 뒤집어졌을 것이다. 꽁쳐 둔 목돈 $500 들여서 비행기 태워 목회자 세미나 보내줬더니 거지와 3일을 보냈다라! 그러나 웃기지도 않게도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해 당신의 마음을 보여주신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품고자하시는 ‘심히 좋은’ 이 사람들을 어찌 품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성 테레사 수녀가 고백했다: “난 가난한 자들, 병든 자들, 그리고 죽어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통해 예수의 얼굴을 봅니다”라고... 그렇다, 한 사람... 한 사람... 그 깊은 관계 속에서 울고, 웃고, 나누며 그 은혜 안에 거하시는 예수를 발견하는 것이다... 바로 그 관계 속에 감춰진 예수를... 이 육의 질그릇 안에 감춰진 보물을 말이다,
그렇기에 난 오늘도 이 창살 없는 어두운 세상 안에서 숨어 마음 졸이고 있는 그들 앞으로 다가 가고자 한다. 부활하신 예수처럼, 긍휼과 사랑을 안고 말이다. 이생에서 입은 상처와 아픔의 흔적들을 간증으로 내보이며 말이다. 바로 내 모습 이대로...
그리고 난 꿈을 꾼다: 우리가 한 마음으로 성전에서 열심히 모이고, 집집이 돌아가면서 빵을 떼며, 순전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성령의 임재를 체험할 그 날을... 그땐 아마도 에덴 때처럼 보시기에 심히 좋은 날이 될 것이다.

(이에 따라, 지난 10월31일(목) Halloween을 대처하여 준비된 Kingdom Autumn Festival에 이어, 오는 11월28일(목) Thanksgiving을 기념하여 밸리지역 독거노인들과 유학생들 및 생활형편이 어려운 가정들을 모시고 따뜻한 킹덤 Thanksgiving 만찬의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다음 면 광고를 참조해주시고, 부디 많은 관심과 후원 및 기도 부탁드립니다. 또한, 이 글을 통해 새로운 믿음의 결단을 가지고 동참하고자 하는 분이 계시면 부디 저에게 주셔서 이 밸리 지역을 향한 하나님의 선교와 그 사명에 함께 하여주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드랜드힐스 연합감리교회
교육부/지역선교 담당 정춘욱 (Christian Jung) 818.456.35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