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종교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은(이준우 밸리커뮤니티 교회 목사)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은(이준우 밸리커뮤니티 교회 목사)

바울이 에베소서를 쓸 당시에 로마나 헬라의 전통도 부모 공경하는 것을 당연시 했습니다. 특히 로마는 아버지의 권한이 절대적인 사회였습니다. 로마에는 “파트리아 포테스타스” 라는 부권법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자기 가족들에 대해 절대적인 권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 가족을 노예로 팔수도 있었습니다. 사슬에 묶고 밤에도 일을 시킬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말이 법이었기에 마음대로 벌줄 수 있습니다. 부권법은 아버지가 살아있는 동안 자녀의 전 생애를 통해 효력을 가졌습니다. 로마 내에서 자기 자식에게 사형 선고하고 처형한 기록도 있습니다.
로마에서는 자녀를 낳으면 아이를 아버지의 발아래 놓는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몸을 굽혀 아이를 들어 올리면 자녀로 인정하는 것이고, 아버지가 등을 돌리고 나가면 자녀를 인정하기 않습니다. 그러면 아이를 버려야 합니다. 종들은 거부된 갓난아이를 데리고 로마 광장으로 갑니다. 그곳에 아이를 버립니다. 그러면 누구든지 와서 아이를 가지고 갈 수 있고, 그 아이는 그 사람의 소유가 됩니다. 어떤 사람들을 버려진 아이를 양육해서 노예로 팔거나, 매음굴에 팔기도 했습니다. 이때 그리스도인들은 아이들을 데려다가 그들이 운영하는 고아원에서 길렀습니다. 이것이 당시 로마에서 일어나는 일이었다고 바클레이는 말합니다. <바클레이, 에베소서 주석, P272-274> 이런 시대의 상황을 보면, 로마가 한국보다 부모 섬김이 더 엄격했습니다. 이렇게 부모를 섬기는 것이 당연시 되는 사회에서는 성경은 부모 공경에 대한 명령이 필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성경은 이것을 강조하고 있을까요. “네 부모에게 순종하라.”“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명령으로 되어져 있습니다. 성경이 이 말씀을 기록한 것은 부모 공경에 대한 세상의 방식이 아닌, 하나님 나라 방식을 설명하기를 원하셨습니다. 로마가 가지고 있는 가장에 대한 절대적인 권한은 잘못된 방식입니다. 남성 위주 사회의 가부장적인 원리는 하나님 나라 방식과는 다릅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엡 6:2) 성경은 로마의 부권법과는 달리 어머니가 포함됩니다. 여기서 “공경”이란 말은 “비싼 가격, 높은 평가” 라는 뜻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말씀을 값진 것으로 생각하라는 말입니다. 부모님이 배우지 못하고 가진 것이 없다고 무시하지 말고, 그분들을 높이 평가해서 존중하라고 합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라”(엡 6:1)고 합니다. “순종”은 “듣다. 귀 기울이다”는 뜻입니다. 순종은 경청하는 것입니다. 엄마가 “말 들어라”고 하면, 아이들은 “나 듣고 있어요” 하면서 딴 짓을 합니다. 듣는다는 말은 듣고 따른다 것이 다 포함됩니다. 한자의 경청이란 단어가 그것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경청(敬聽)은 “귀와 눈과 마음과 왕” 네개의 글자가 들어 있습니다. 귀로 들을 뿐 아니라, 눈은 상대에게 가있고, 마음을 주면서 왕에게 듣는 것처럼 하는 것입니다. 듣는다는 것은 모든 것을 동원해서 집중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하나님께 일천 번제의 기도를 하면서 “지혜로운 마음을 달라”고 합니다. 여기서 지혜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분별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경청입니다. 잘 듣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이것을 구했습니다.
성경은 또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엡 6:1)고 합니다. 이것이 로마의 절대적인 부권법과 다른 것입니다.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악한 명령을 하는 것을 금하고 있습니다. 부모들 역시 하늘의 하나님께 순종해야 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럴 때에 부모 공경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자녀와 부모 모두에게 기쁨이 됩니다. 그런 상황에서 부모를 공경하는 것에 대해 “이것이 옳으니라” 고 합니다. “옳다”는 것은 “정당한, 원칙, 정의” 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정의를 말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정의가 부모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원칙이고 정당한 원리라고 합니다. 다른 이유 이전에 하나님께서 이것이 옳다고 말씀하셨기에 부모님께 순종하는 것이 옳은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약속이 있습니다.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엡 6:3) 정말인가요? 그런데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 중에 가난한 사람도 있고, 일찍 죽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기서 잘된다는 것은 큰 부자가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마음의 평안을 의미합니다. 존 스타트는 이렇게 해석합니다. “잘되고 장수하는 약속은 개인에게 적용되는 원리이기보다는 사회에 적용되는 일반적인 원리이다.” 부모에게 순종하는 사회는 안정된 땅이 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부모님께 순종하고 공경하는 것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그런 땅에 하나님께서 안정과 평안을 약속하십니다. 그럴 때 우리의 삶에도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과 기쁨이 있습니다. 5월에 이 말씀을 다시 돌아보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