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종교 교회에 대하여 – (6) 참 예배 2

교회에 대하여 – (6) 참 예배 2

남성천 제일성결교회 담임목사

교회에는 인적 요소가 있다. 성경은 이걸 성도 혹은 형제라는 말로 표현한다. 교회의 인적 요소에는 교역자도 있다. 또 교회에는 물적 요소가 있다.
헌금이 그것이다. 내용적 요소인 예배도 교회에는 있다. 이처럼 교회를 이루는 요소들에 대해 지금까지 이 지면을 통해 말해왔다.
오늘은 지난 달에 이어서 교회의 내용적 요소인 예배에 대해 한 번 더 말하고자 한다. 다른 것에 비해 이것을 한 번 더 강조하는 이유는 교회는 근본적으로 예배를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교회 안에 성도/형제가 있고 교역자가 있고 물적 요소가 존재하는 이유는 예배를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이 근본 토대를 기억하지 못한 채 자신의 정치적 식견을 주장하고 자랑하기 위해서나, 자기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서, 인간관계를 위해서, 혹은 놀이터로 여기며 교회를 출석한다. 아니다. 교회는 예배를 드리는 장소이다.
그렇다면 주님은 우리가 어떤 태도로 예배를 드리길 원하시는가?
첫째, 기쁨으로 예배를 드리길 원하신다.
슬픔으로 가득한 예배를 드리느냐, 기쁨으로 가득한 예배를 드리느냐는 우리의 감정이나 환경에 달린 문제가 아니다. 어디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달린 문제이다. 시편 80편. 이스라엘은 모든 것이 불편했던 광야생활을, 부정적이고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대신에, 이 시간 역시도 하나님을 만난 시간이었다 고백한다.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경험했던 시간이었노라, 그래서 기쁨의 시간이었노라 찬양한다.
사단이 원하는 것은 내가 지금 내 환경 가운데 일어나고 있는 일에 매몰돼 비명을 지르느라, 그 입술로 하나님을 찬양할 겨를을 갖지 못하는 것이다. 나의 눈과 입술을 사단이 원하는대로 사용해서는 안될 것이다.
인생. 거기에는 물 없는 사막과, 눈을 뜨지 못하게 하는 황사와, 살을 태우는 태양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잘 되돌아 보면 우리 삶에는 구름기둥과 불기둥/메추라기와 만나로 돌보시고 인도하시고 이끌어주시는 하나님께서 계셨음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 하나님이 지금도 우리를 주관하고 계신 다. 환경이 아니라, 그 환경 가운데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보며, 기쁨으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
둘째, 예배의 의미를 되새기며 예배를 드려야 한다.
예배는 그저 오랫동안 해왔던 하나의 습관이 아니다. 성도들이 가장 경계하여야 할 예배의 태도가 습관을 따라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습관으로 교회에 나오고, 습관으로 찬송하고, 말씀을 습관으로 듣고. 가장 위험한 예배이다. 내 삶에서 환경의 척박함이 갖는 의미를 새기는 예배. 내 삶에서 내가 죄인이거나, 의인이라는 것. 내가 성도이고, 형제라는 것. 내가 부모이고 자녀라는 것. 이것들이 갖는 의미를 새기는 예배를 드려야 한다. 예배자의 정신을 가지고, 내게 예배란 어떤 의미인지, 끊임없이 되새기면서, 언제나 함께하시는 주님을 찬양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예배의 대가를 소망해야 한다.
성도는 무슨 대가를 바라고서 마음에도 없는 예배를 드리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은혜로, 예수님을 통해 구원받게 하셔서, 성령의 생명의 삶을 살도록 하신 것에 대한 감사로 예배를 드리는 거다. 하지만 이것이 예배에 대한 어떤 결실/열매/대가를 기대해서는 안된다는 걸 뜻하는 건 또 아니다. 예배의 대가를 기대하는 건 계산적이거나 질 떨어지는 것이라는 건 또 아니다. 성도가 감사함으로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은 당신께서 예비하신 복을 주신다. 하나님은 이것을 약속하셨고, 그렇기에 성도가 이 약속을 기대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예배의 대가를 기대하며 예배를 드릴 필요가 있다.
기쁨으로 드리는 예배. 하나님은 복을 더하여 주신다. 감사함으로 예배를 드릴수록 하나님은 성도들 삶에 복을 누리도록 인도하신다. 예배는 기대와 소망의 예배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