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안정섭 목사 (밴나이스 연합감리교회)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드라마 보는 것을 즐기는 것 같습니다. 한류라는 새로운 문화의 흐름을 만들어 낼 만큼 한국의 드라마의 수준이 많이 높아졌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드라마를 거의 보지 않습니다. 한번 시작하면 끝까지 보아야 하는데, 그렇게는 도저히 시간을 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신에 피곤할 때는 오락 프로그램을 한 편씩 봅니다.
웃으며 한 시간 정도 시청하다 보면 여러 복잡한 생각에서 벗어나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됩니다.
왕성하게 활동하는 오락 방송인 중에 김구라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에 대해 기억에 남는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그가 한동안 방송 활동을 잠정적으로 중단했던 적이 있었는데, 십여 년 전 위안부를 비하하는 발언을 했던 것이 그 때에 와서 심각한 파문을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그 사건에 대해서 김구라씨는 이렇게 말하며 사죄했습니다.
“성숙하지 못하고 많이 부족했던 시절, 인터넷 방송을 통해서 말했던 내용들이 이 시점에 다시 문제가 되는 것을 보면서, 입 밖에 나온 말을 다시 주워 담을 수는 없다는 세상의 진리를 새삼스럽게 깨달았습니다.”
말은 참 무서운 것 같습니다. 십여 년 전에 한 말이라면 당연히 지금은 기억조차 나지 않고 잊어져 버렸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누군가 그 말로 인해 상처를 받았다면, 말한 당사자는 잊어 버렸어도 상처를 입은 피해자에게는 평생 동안의 응어리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쁘게 삶을 살아가다가 뒤를 돌아보면 오랫동안 잊고 지내던 사람들이 문득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기억은 언제나 그 사람에 대해 느꼈던 감정을 동반합니다. 그 사람의 언행과 성품이 함께 기억납니다. 칭찬과 격려와 위로가 되는 말은 다시 기억해도 흐뭇하고 기분이 좋은데, 당시에 아픔을 주었던 말이나 비방의 말들은 기억이 떠오름과 함께 또 한 번 아픔을 가져다줍니다. 시간이 흐르면 자연히 잊어지고 해결되어야 할 것 같은데, 오래 전 그 말이 우리에게 여전히 기쁨도 주고 아픔도 주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번 입 밖에 나온 말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 이 말은 단순히 옳다고 동의하는 정도가 아니라, 말에 대한 중요한 지침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은 심는 대로 거두기 때문에 무슨 말을 심느냐가 십년 후의 우리의 운명, 다른 이의 운명을 바꿀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성서에서 “혀는 일만 악의 뿌리”라고 합니다.
생각 없이 가볍게 던진 말이 마치 바이러스처럼 오래 오래 잠복하고 있다가 언젠가 또 기억나 누군가의 마음을 찢으며 깊은 상처를 낼 수 있습니다. 반면에, 한 마디의 말 덕분에 절망에서 살아나고 새로운 희망을 찾으며 평생 힘을 얻는 경우도 있습니다.
“칼로 찌름 같이 함부로 말하는 자가 있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과 같으니라/ 진실한 입은 영원히 보존되거니와 거짓 혀는 잠시 동안만 있을 뿐이니라” (잠언 12장 17-19)
우리는 오늘 하루 동안 어떤 말을 했나요? 말을 안 하고 살 수는 없는 일이니, 이왕 해야 하는 말이라면 되도록 좋은 말, 힘이 되는 말을 해서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주면 어떨까요? 내 가족, 내 동료, 내 이웃이 웃으면 나 자신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긍정적인 언어는 긍정의 에너지를 가져옵니다. 희망찬 언어는 희망찬 미래를 가져옵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합니다. 단순히 오늘 하루에만 좋은 기분을 주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평생의 기쁨과 힘이 될 수 있습니다. 누군가 나를 십년 후에 떠올려 보면서, 내가 건넨 한 마디 기분 좋은 말, 격려가 되는 말과 함께 나를 기억한다면 그것은 축복이지 않을까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내가 어떤 말을 사용하느냐와 깊은 관련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오늘 무심코 던진 한 마디 말이 십 년 갈 수 있습니다. 평생 갈 수도 있습니다. 그 말이 칼로 찌름 같이 누군가에게 기억될 수도, 좋은 약과 같이 좋은 회복의 효과를 볼 수도 있습니다.
오늘 하루, 매일 매일, 우리의 입술에 하나님이 듣기에 기뻐하실 말, 주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할 말들이 가득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