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종교 사랑의 렌즈

사랑의 렌즈

어릴 때 봤는데 아직도 기억이 나는 영화가 있습니다. 바로 ‘얄개시대’라는 영화입니다. 얄개는 보통 장난꾸러기가 아닙니다. 하루는 수업중인데 친구가 옆에서 자고 있는 겁니다. 그 친구는 안경을 끼고 있었습니다.
장난기가 발동한 얄개는 빨간 매직으로 안경 렌즈에 가득 칠합니다. 그리고 “불이야!” 소리칩니다. 그러니까 자던 친구가 깜짝 놀라서 일어났는데 눈앞에 불이 활활 타고 있는 겁니다. 당황한 이 친구는 조용한 교실 안을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한바탕 소동을 벌입니다. 이 일로 선생님에게 혼이 난 것은 물론입니다.

요즘 팩트 체크가 유행인데, 팩트는 무엇입니까? 아무 일도 없었던 거죠. 단지 안경렌즈에 빨간색이 칠해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그 렌즈로 밖을 보니 온 사방이 불이었습니다. 참으로 시사 하는 바가 큽니다.

이렇게 우리 모두는 나름대로의 렌즈를 끼고 세상을 봅니다. 그런데 어떤 렌즈를 끼고 있느냐에 따라서 같은 것도 다르게 보이는 것입니다.
흰 백합도 노란 렌즈를 끼고 본다면 노란 백합으로 보이는 겁니다. 아무리 착한 사람도 우리가 색안경을 끼고 보면 나쁜 사람으로 보일 겁니다. 이렇듯 같은 사람, 같은 일을 겪지만 전혀 다른 평가와 반응을 보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점점 경쟁구도, 대립구도로 치닫고 있습니다. 나라와 나라가 ‘반목(反目)의 렌즈’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러니 싸움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국민들도 덩달아 서로 다투기 바쁩니다.

또한 점점 많은 사람들이 ‘돈의 렌즈’로 서로를 바라보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돈으로 사람을 평가합니다. 그래서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진리가 된 지 오래입니다. 이렇게 ‘돈의 렌즈’로 서로를 바라보면 결국은 패가망신하고 맙니다.
다큐멘터리로 방영된 실제 일입니다. 경기도의 한 마을에 아파트 건설 계획이 추진되면서 땅 값이 갑자기 몇 백배 올랐습니다. 그동안 가난했지만 서로 도우며 오손도손 살던 사람들이 땅을 팔아 큰돈을 만지게 되었습니다.
집집마다 몇 십억에서 몇 백억의 돈이 생겼습니다. 이 돈이 그들을 행복하게 만들었을까요?
몇 년 후 가족들은 재산싸움으로 갈라지고 도박에 술에 절어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람들이 늘어갔습니다.
병색이 가득한 노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돈이 없었던 때로 돌아갈 방법이 있다면 무슨 일이라도 하겠다”며 큰 한숨을 지었습니다.

어떤 렌즈를 끼고 보느냐가 이처럼 중요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렌즈로 세상을 봐야 할까요? 바로 ‘사랑의 렌즈’로 세상을 보고 서로를 바라봐야 합니다. ‘사랑의 렌즈’ 만이 반목(反目)을 화목(和睦)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사랑의 속성이 ‘오래 참고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기’(고린도전서 13:4-7) 때문입니다

특별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사랑의 렌즈’로 세상을 바라보는 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랑의 렌즈’외에는 이 명령을 지킬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사랑의 렌즈’를 벗고 ‘반목의 렌즈’, ‘돈의 렌즈’를 끼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연일 방송에서 기독교와 교회의 문제가 나오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이제라도 우리는 다른 렌즈들을 벗고 ‘사랑의 렌즈’를 껴야 합니다. 이 방법만이 삭막해져가는 이 세상을 따뜻하고 평화롭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모든 사람들이여! 특별히 그리스도인들이여! ‘사랑의 렌즈’를 사용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