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의 시작은 애덤 스미스 (Adam Smith, 1723-1790)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가 쓴 <국부론>은 경제학자의 기준이 되었고, 그를 경제학의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애덤 스미스는 “개인의 이익 추구가 집단을 이롭게 한다.”고 주장합니다.
개인의 이기적인 행동이 결국에는 사회에 더 큰 부로 돌아온다는 주장입니다. 다시 말하면, 돈을 더 벌기 위한 기업의 이기심이 양질의 물건을 만들게 되고, 다른 기업과 경쟁에서 이기려고 더 좋은 제품을 만들면서 사회는 발전한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개인이 부를 가지면 사회 전체에 기여하게 되고, 그러면서 세상은 이롭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 경제이론과 산업혁명이 만나면서 기업들은 최고의 이윤을 만들어 냈습니다. 기업들이 많은 이익을 남겼고, 공장은 지어지고 일자리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삶은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이론이 나왔는데 공산주의입니다.
인간이 이기심은 결코 사회에 환원하지 않고 자신의 배만 불리운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함께 벌어서 함께 나누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사람의 주장에 전 세계 절반의 사람들이 동의했고, 그렇게 공산주의 국가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런 공산주의도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사람들을 더욱 더 비참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1994년 하나의 경제학 이론이 나옵니다. ‘내시 균형’(Nash Equilibrium) 이론입니다. 이것으로 존 내쉬(John Nash, 1928-2015)는 노벨 경제학상을 받습니다.
내쉬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욕망만을 채우기 위해서 이기적으로 행동하게 된다면 모두 실패하게 될 것이다. 상대방을 배려하면서 자신의 만족이 최대가 되도록 행동한다면 모두가 최대의 만족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이론은 술집에서 착안을 했다고 합니다. 자신을 포함해서 친구 5명이 술집에 갔습니다.
반대편에 보니 5명의 여성이 앉아 있었습니다. 아담스의 이론대로라면 남자 5명이 모두 가장 아름다운 여성과 데이트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한 사람만 아름다운 여성과 데이트를 하고, 나머지 친구들은 데이트를 하지 못하므로 불만이 생기게 됩니다. 또 데이트 신청을 받지 못한 4명의 여성들도 기분이 나쁠 것입니다. 그러면 한 커플만 기분이 좋고 나머지 8명은 기분 나쁜 상태로 돌아갑니다. 이기적인 선택은 대부분을 불편하게 만듭니다.
내시의 결론은 집단을 이롭게 하는 것은 각자가 조금씩 손해를 보는 것이라고 합니다.
각자가 다른 여성에게 데이트를 신청하면, 각자는 최선이 아니지만 집단의 관점에서 더 큰 분쟁을 피하고 일정부분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어떤 제도를 택할 것인가는 중요한 것입니다. 그것이 사회의 성벽이 되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를 주장하는 사람은 그들의 구상대로 자본주의 성벽을 만들 때, 사회 구성원들이 잘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공산주의도 마찬가지입니다. 함께 나누는 세상으로 만들 때에 각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것이 그 사회의 성벽입니다. 성경은 자신을 생각하지 전에 이웃을 먼저 생각하라고 하십니다. 그럴 때 세상은 안전해 집니다. 많은 사람이 만족할 수 있습니다.
나의 기쁨은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만나는 사람이 나를 기쁘게 만듭니다.
내가 만나는 상대를 기쁘게 한다면 거기에서 함께하는 기쁨이 만들어 집니다. 그럴 때 세상은 기쁨으로 풍성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