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시다. 가장 좋은 길이 무엇인지 알고 계시다. 설혹 우리들은 정말 무엇이 좋은 것인지 모르면서 살기도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정말 무엇이 좋으며, 또 무엇을 목적으로 살아야 하는지, 가장 잘 알고 계시다. 이런 이유로, 우리 스스로가 목적을 세우고 그것을 위해 사는 것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정하신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아, 그 목적을 따라 사는 편이 훨씬 지혜로운 인생을 사는 길이다.
그리고 이 원리는 교회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교회는 교회 안의 사람들이 설정한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교회를 향해 설정하신 목적을 따를 때, 가장 가치 있는 교회/가장 좋은 교회/가장 행복한 교회가 된다. 오늘날 교회가 너무 많다는 게 문제인가? 아니다. 주님께서 정해주신 목적을 따르지 않는 교회, 목적은 온데간데 없고 생존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교회가 많다는 게 문제다.
그렇다면, 교회의 목적은 무엇인가?
첫째, 예수 안에 거하는 것이 교회의 목적이다.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이다. 너무나 단순하고 당연해 보이지만, 사실 이 목적조차도 상실한 교회들이 존재한다는 것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교회는 행동하는 것에가 아니라, 관계하는 것에 일차적인 목적을 두어야 한다. 교회가 세상에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하는 행동을 보이기 위해서, 가장 우선해야 할 것. 세상의 필요가 무엇인가를 파악해 그것을 채울 행동강령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이신 예수님 안에 단단히 거하는 것이다. 요한복음 15장 5절. 열매는 언제 맺어지는가? 내가 열매를 맺고자 노력할 때가 아니다. 내가 예수 안에 거하고, 예수님이 내 안에 거하실 때다.
교회의 목적은 성도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도록. 또, 예수님 안에 거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시키고 돕는 데에 있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세우신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자기 곁에 함께 두시기 위함이었다.
둘째, 전도하는 것이 교회의 목적이다. 예수님은 전도를 위해 제자를 세우셨다. 교회는, 믿는 자들을 더하게 하기 위해, 어떤 전도 방법이 효과적인지, 늘 고민해야 한다. 그런데 이와 동시에, 전도와 관련해 주의할 것이 있다. 주님의 교회를 위한 전도가 아니라, 내 교회를 위한 전도에 빠져서는 안된다. 성경에서 ‘전도’라고 우리말로 번역된 모든 원어는 오로지, ‘예수님께서 구세주이심을 설득한다’하는 뜻으로만 사용된다. 무슨 말인가? 믿지 않는 사람을 믿도록 하는 일만을 전도라고 성경은 부른다는 말이다. 이럴진대, 교회가 전도의 본 뜻을 망각하면, 믿지 않는 자를 전도하기 위해서 써야 할 교회의 재원과 에너지를, 다른 교회 교인을 내 교회 교인으로 만들기 위해 낭비해 버리는 어리석음에 빠진다. 회사의 주인에게는 회사의 전체 고객 어카운트가 느는 것이 중요하지, A부서의 어카운트가 B부서의 어카운트로 옮겨지는 것은 아무런 의미 없다.
수평이동을 전도라고 포장하는 교회 모습의 이면에는, 세상과 불신자들을 향한 패배감과 두려움이 존재한다. 역사적으로, 교회가 전도에 대한 패배감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을 때는, 늘 부패하고 있을 때였다. 명료하게 그랬다.
마지막으로, 치유하는 것이 교회의 목적이다.
마가복음 3장 15절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모으신 이유? 병 고치는 능력을 갖도록 하시기 위해서였다. 사람들 앞에서 제자들이 내어쫓고 병을 고치는 힘을 통해, 어떤 권위를 갖도록 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의 기쁨을 경험토록 하기 위함이었다.
예수님조차도, 당신의 권위를 드러내기 위해 치유사역을 하셨던 것은 아니다. 하늘 나라의 기쁨을 사람들에게 이 땅에서 미리 경험토록 하기 위함이었다. 사람들에게 하늘 나라의 기쁨을 경험토록 하기 위해 교회가 수행하는 치유의 사역들. 육체의 치유/관계의 치유/환경의 치유/영적 치유. 우리가 섬기는 교회는 이를 위해 부름받은 교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