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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보고 몇 살이냐고 물어 보던 분이 말했다

김장숙 -시네마 덴탈케어 원장

"나이가 많은 줄 알았어요. 너무나 못 걸어서요.”
이번에 죤 뮤어 트레일 구간 중 맘모스의 에그뉴 메도우(Agnew meadows)에서 요세미티의 튜알로미 메도우까지 백팩킹을 하면서 들었던 충격적인 말이었다. 그 말은 다시 말해서 9명의 참가자 중에서 나의 느린 걸음이 팀원들의 단체 행동에 누가 되기도 한다는 표현일 수도 있다. 그럴 수 없다. 정신이 바짝 들었다. 자존심이 문제가 아니고 해내야 하는 “미션”인 것이다. 내가 선택한 것이다.
인디펜던스 데이를 낀 닷새의 휴가를 만들어서 왜 이처럼 고생길을 선택했을까? 나는 왜 시지프스의 신화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이 무거운 짐을 지고 눈 속을 이렇게 걷고 있는 것일까? 잠자는 집인 텐트와 하루 세끼 음식들을 모두 싸매지고 걸어가는 이 순례의 길을 왜 시작했을까?
8,000 피트가 넘는 지역에 다다른 후에는 글레시아처럼 겨울에 싸인 눈들이 아직도 그대로 눈덩어리가 되어 있었다. “글레시아”라는 말은 일 년 내내 눈이 녹질 않고 얼어서 보존된 상태가 몇 년이고 지속되는 지역을 말한다. 지난겨울에 정말로 눈이 많이 내렸다. 말이 7월이지 가넷 레이크(Garnet Lake)와 따우젼드 아일랜드 레이크(Thousand Islands Lake)의 수면이 아직도 얼음으로 덮여 있었다.
얼음과 눈으로 덮인 그 곳으로 모르고 걸어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침에 잔잔한 호수의 물에 비친 산 그림자의 그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없다면서 서대장님은 무척 안타까워하셨다.
눈 속에 파묻힌 트레일을 버려야 했기에 눈 위로 길을 찾아 다녔다. 미끄러운 눈길을 가기에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 등산화 밑에 크램폰을 끼웠다. 내 크램폰은 좋은 성능의 것이 못되었다. 무게를 줄이기 위해서 간략하고 가벼운 것을 가져왔기 때문이었다. 좀 투자하여 비싸더라도 가볍고 좋은 것을 하나 샀으면 좋았을 것을… 한 가운데에 위치한 4개의 스파이크는 안정되게 몸의 균형을 잡기에 역부족이었다. 나의 몸무게 160 파운드에 나의 백팩 40 파운드, 그러니까 총 200파운드의 무게를 싣고 나의 두 발이 정말로 충성스럽게 걸어준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극기의 노력이었다. 단체행동에서 낙오되어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었나 보다.
2년 전에 함께 백팩킹을 하시던 분들 중의 한 분이 발목을 다쳐서 걸을 수가 없었으므로 하루 길이 서로 밀렸다 했다. 산에서 만났던 분들의 도움으로 헬리콥터를 불러서 내려왔다 했다. 나는 그런 처지가 되고 싶질 않아서 초인간적으로 긴장하여 닷새를 보냈다. 무게에 휘청거려 헛딛지 않으려고 애썼다. 혹 돌 뿌리에 걸려 균형을 잃을까봐 주위의 아름다운 풍경도 보지 않고 땅바닥만 열심히 보고 걸었다. 어쩌다 넘어지면 벌떡 다시 일어나 아무렇지 않은 듯 잽싸게 걸었다. 걸으면서 수도 없이 스스로 생각해보았다. 내가 왜 이 고생을 하는 것일까?
오래전에… 그래 14년 전이었다.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나의 막내아들 세영이와, 독일에서 온 언니의 딸 마리아와 함께 죤 뮤어 트레일(John Muir Trail) 모두 211 마일을 요세미티에서 마운틴 휘트니까지 20일 동안 걸었었다. 이번에 대장으로 가셔서 눈 속에서 모든 길을 GPS를 써서 찾아주신 서대장님 부부도 그 때에 함께 갔었다. 그 때는 8월 이었지… 마리아와 세영이는 그 이후로 지금도 아웃도어(outdoor wild life)를 즐긴다.
14년 전에는 가볍게 걸어서 올라갔던 도나휴 패스(Donahue Pass, 11,066 feet)를 이번에는 눈 속을 가로질러 숨 가쁘게 올라갔다.
끝없이 펼쳐지고 계속되는 하얀 세상은 장관이었다. 힘들었기에 더욱 귀하다고 할 수 있겠다. 눈이 없을 땐 지그재그 스윗치 백으로 이어지는 트레일이 패스의 꼭대기까지 연결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깊숙이 쌓아 내려앉은 하얀 눈두덩이들이 모든 것을 덮었다. 패스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곧장 눈을 밟으며 앞으로 앞으로 새로운 직선으로 걸어 나갔다.
가다가 만난 사람에게 “우리 대장 나이가 몇인지 아느냐?”하고 말하던 중에 물어봤다. “몇인데?” 자랑스럽게 나는 대답할 수 있었다. “9월이면 80세가 된다.”
일주일에 6일 동안 바쁘게 살던 나 스스로에게 준 나의 휴가 “5일간의 JMT”는 좋은 선택이었을까? 2월에 간 채널 아일랜드에서의 8마일 하이킹과, 3월에 간 안자 보레고에서의 8마일 하이킹과, 그리고 떠나기 직전에 마운트 윌슨에 올라간 10마일의 하이킹 연습만 가지고 덤벼든 내가 정말 무모했다. 얼마나 가고 싶었기에 이처럼 부딪혀본 몸부림이었을까?
지금은 힘들었던 백팩킹의 후유증이 모두 회복되어 몸과 마음이 산뜻해졌다. 부르텄던 입술과 시큰했던 무릎과 발목도 차츰 괜찮아졌다. 극기를 경험한 몸에서 필요 없는 불순물이 빠져나가고 정화됨을 느낀다. 몸속의 내장과 팔다리 근육들이 새로워졌다. 신비로운 자연의 조화를 보여준 산 속의 모습과 해질 녁의 조용한 고요함… 말없이 서있는 대지의 변함없는 처연함… 생각해보면 머릿속이 맑아져 온다.
사진들을 들여다보면 내가 그 속에 있었던 것이 사실이 되어 다가온다. 참 좋다… 나도 서대장님처럼 80세에도 JMT를 오를 수 있을까 궁금해진다. 글 : 김장숙 (시네마 덴탈케어 원장 661.253.3030)